뮤지컬 '시라노'는 내가 본 뮤지컬 중 단연 손에 꼽는 명작이자 내 인생작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2019년 재연을 한 이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리운 마음에 제발 돌아와 주기를 바라며 19년의 기억을 더듬어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재연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 결국 원작 책도 사 읽었다. 뮤지컬은 2시간 반 정도에 모든 내용을 담아야해서 급전개라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 '시라노'는 원작 소설이 170쪽가량의 짧은 소설이라 그런지 급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솔직히 2019년 이맘때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임에도 예매할 때도, 예매하기 전에도 인기가 없었던ㅠㅜ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놉시스가 너무 좋아서 보게 되었지만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봤던 것 같다. (이 당시에 오케스트라 대신 AR사용 때문에 말이 많았었다.)
이날의 캐슷은 류정한&박지연&송원근 배우님!
내 최애 페어이고 세 분다 너무 애정 하는 배우님들이라 너무 행복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인 뮤지컬 '시라노' 리뷰 시작!(스포 없음!)
01. 시라노
고결한 별빛이 되어 죽은 밤을 깨우리라. 날 아는 친구, 미지의 운명이여 어서 오라
저 하늘이 날 버려도 이 육체가 소멸해도 내 영혼만은 영원히 숨쉬리.
이 뮤지컬을 소개할 때는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보다 주인공 '시라노'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 뮤지컬을 보고 오면 줄거리에 한번 울고, 시라노의 선택에 두 번 울고, 그의 삶을 돌아보며 세 번 울고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시라노는 현실에는 없을 온갖 영웅적인 서사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 연극을 모욕하면 나타나서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가난한 시인들이 무시받지 않고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의 순수한 용기는 '거인을 데려와'라는 넘버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홍광호 배우님의 '거인을 데려와'는 뮤지컬 전체를 보지 않더라도 꼭 보기를 추천한다. 내용을 알면 더 좋지만, 이 노래의 가사와 배우님의 연기만으로도 느껴지는 벅차오름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자존감이 떨어질 때 듣기 좋은 넘버이기도 하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넘버이기도 하다.

다시 시라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시인이자 최고의 검사,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모든 것 하나 빠질 것이 없이 출중하다. 딱 한 가지, 크고 흉측한 코를 제외하면 말이다. (솔직히 보다 보면 코 따위는 안중에도 보이지 않게 되지만, 시라노는 주변에서 '코'를 언급하기만 해도 칼을 빼들 정도로 코를 콤플렉스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지만 동시에 커다란 코가 웃음거리가 된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짝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바로 파리 최고의 미인이자 그의 오랜 친구인 '록산'이었다.
록산은 신문을 발행할 정도로 자기 주관이 있고 주도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시라노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과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시라노는 그런 록산을 깊이 사랑하지만, 그의 흉측한 코 때문에 록산에게 선뜻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유독 록산 앞에서만 약해지는 순애보 같은 면 때문도 있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늘 상대만을 바라보지만 늘 상대를 배려하는 시라노의 사랑법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소년 같으면서도, 늘 자신이 아닌 상대를 위하고 있다.
02. 줄거리
그래도 간단한 줄거리 정리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원작 뒤표지에 있는 줄거리 정리를 해두려고 한다. 나는 이 시놉시스를 보고 시라노라는 작품을 보기로 결심했지만 만약 일말의 스포일러도 원하지 않는 분이시라면 안 보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빛나는 시적 재능과 함께 기괴한 코를 타고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그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록산을 사랑하지만
그녀는 준수한 외모의 청년 크리스티앙과 연인으로 맺어진다.
오로지 록산의 행복만을 바라는 시라노는
말주변이 없는 크리스티앙의 얼굴 뒤에 숨어 연애편지를 대필하며 하얀 종이 위에 붉은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03. 낭만적인 넘버
당당히 걸어가리.
승리도 패배도 다 내 몫이니
늘 그렇듯 기꺼이 맞서리라
홀로
뮤지컬에서 스토리만큼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넘버일 것이다. 이 넘버 진짜 좋다,라고 느낄 때는 멜로디가 좋거나 가사가 좋을 때인데 이 작품에는 둘 다 잡은 곡들이 정말 많다. (일단 작곡부터가 프랭크 와일드혼)
'Alone'은 1부 마지막에 나오는 곡으로 주인공 시라노가 독백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나는 뮤지컬을 보기 전부터 이 곡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보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앞뒤 내용을 아는 상태에서 이 가사가 시라노라는 인물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그 의지와 웅장함에 압도되어버린다.
앞서 소개한 '거인을 데려와'와 'Alone'은 뮤지컬 시라노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밖에도 기사도 뽐뿌가 오게 만드는 '가스콘 용병대'나 재치 있는 말장난이 돋보이는 '터치' 등의 명곡이 정말 많다.
04. 눈물 나는 엔딩
나의 천사, 나의 꿈
내 영혼에 숨결 같은 그대여
스포를 하지 않겠다고 했기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것이다. 이 작품을 소개할 때 엔딩을 빼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ㅠㅜ (실제로 나는 공연장에서 숨죽이고 펑펑 울다가 화장이 다 번져버려서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마지막에는 시라노의 독백이 나오고 그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동경하는 우상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도 계속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ㅋㅋ 자세한 건 나중에 원작 소설을 리뷰할 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스포 위기;;)
여기까지 오늘은 사심 가득 담긴 내 최애 뮤지컬 '시라노'를 리뷰해보았다! 올해 영화도 개봉했던데ㅠㅜ 이참에 삼연도 와줬으면 좋겠다. 정말 보석 같은 작품인데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아서 너무 아쉽다... 나만 알고 싶은 마음과 더 떴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달까...
이미 앞선 영상들로 너무 티나긴 했지만ㅋㅋ 마지막은 너무너무 애정하는 2017년 초연 당시 홍배우님의 인터뷰 영상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시라노 제발 돌아와ㅠㅜ